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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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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거니는 사람들 [707×주인공/인셉션AU] 2018.02.24 수상한 메신저 전력 60분 - 잠들 수 없는 밤 “부탁하겠다는 사람들 태도가 어쩜 이렇죠? 오라 가라 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분 제자라는 걸 증명해 보이라고요? 이런 곳에서?”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선 여자가 눈만 치켜 뜬 채 안경을 낀 남자와 갈색 장발의 남자 쪽을 바라보자,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들 사이에 놓인, 드럼통 안에 지펴진 불만이 요란하게 타오르며 창고 안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여자가 나갈듯한 낌새로 창고 문 쪽으로 몸을 틀자, 그를 제지하려는 듯 장발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붉은 머리의, 안경을 낀 남자는 그럴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어 그의 거동을 막아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상황의 어색함을 느낀 것인지 품에서 무언가..
Sugar High 2018.02.17 수상한 메신저 전력 60분 - 농담/쓸쓸한 전화 이당류라는 것들은 늘 갈증을 남긴다. 본체의 성질보다 더 끈적이고 질척이는 부산물. 그것은 죄책감과 닮아있다. 고약하게도, 인간의 뇌는 오로지 포도당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주어진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뇌수에 당을 공급해야 한다. 결국 삶이란 채울 수 없는 갈증, 속죄할 수 없는 죄의 기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적어도 세영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설탕은 갈증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죄책감을 상기시키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설탕을 갈구해야만 한다. 고양에 도취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스름하고 푸른, 새벽과 닮은 빛을 뿜어내는 모니터를 마주한 채, 세영은 두 캔 정도되는 에너지 드링크를 연달아 들이켰다. 수 분 정도..
Caramel Colored 797 세차를 하기 위해 나온 세영은 답답한 마음에 차창을 내렸다. 히터를 약하게 틀어놓은 탓인지 바깥의 공기와 차 안의 공기가 머뭇거림없이 금세 섞여든다. 정체된 도로에서 경적소리만이 요란하게, 사방에서 튀어오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세차 할 걸 그랬지. 하는 뒤늦은 후회를 입김에 담아, 희뿌옇게 풀어지고 있는 하늘에 내어본다. 심상치 않은 것이 눈이 오려는 모양이었다. 다른 운전자들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인지 여기저기서 담배 연기가 흩어진다. 차들이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하자, 세영은 주말도 아닌데 왜 도로에서 난리통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냈다. 초, 중, 고등학교 할 것 없이 주욱 늘어서 있는 학교들, 교문 앞 가판에 흐드러진 온갖 색의 꽃다발들, 교복을 입고서는 미묘한 표정들을 한..
거대충돌가설 D-? 길게 하품을 하며 거실로 나온 세란은 부산스러운 등짝을 보았다. 세영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흘러간 걸그룹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으레 해오던 난장을 벌이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불쑥 그의 옆으로 다가간다. “뭐 해.” 놀라지도 않고 저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낯짝. 세란은 세영의 이런 점이 재수없었다. 자신이 이 시간 즈음에 일어나 당연히 세영에게로 와서 무얼 하느냐고 물을 것을 예상했다는 그 자신감이. “아, 심심해서 창고를 좀 뒤져봤거든. 이런 게 있길래. 손보면 쓸 만해 보이더라고. 거의 다 됐어.” 세영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미끈한 빨간 라디오였다. 쓸 만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괜찮은 생김새라고 세란은 생각했다. 오 분 정..
Clockwork Love Child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최루시엘이 첫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궁금합니다. 상대의 성별이나 나이, 인종 등에 관계없이 완벽하게 빠져들어 버리는 순간의 최세영을 보여주세요! 그는 그것이 태엽 같다고 생각했다. 정교한 장난감에나 붙어있을 법한 생김새였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금으로 된 귀걸이 클러치였다. 턱을 괴고 그것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손을 뻗어 그것을 감아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며칠 전 의도치 않게 '정보'를 접하고 난 뒤부터, 그는 줄곧 그 태엽을 좇아 그것의 뒤에 자리잡곤 했다. 교수는 한창 맥의 역사에 대해 떠들어대는 중이었다. "1980년대 초, 애플은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적용된 데스크탑을 내놓았죠. 그것이 바로 리사 프로젝트입니다." 서서히 하늘 한 가운데를 향..
그들이 사는 도시 김경주의 비정성시에서 "나의 고통은 자막이 없다 읽을 수 없다" 라는 구절과 어울리는 지친 세영이와 세영을 좋아하지만 건조하고 지친 여주 ... (안해주셔도 됩니다 항상 응원해요 공육님) 나는 유배되어 있다 기억으로부터 혹은 먼 미래로부터. TV에선 세영이 일요일 아침마다 챙겨보는 퀴즈쇼가 한창이었다. 흔히 ‘돼지 누린내’라고 불리는, 안데스테론에 반응하는 DNA가 무어냐 묻는 문제에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OR7D4'라는 답을 뱉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식탁 의자 끝에 한쪽 다리를 끌어안은 채 앉아있던 여자가 무심하게 리모컨을 들어 TV를 꺼버렸기 때문이다. 아마 그것은 정답이었을 것이다. 세영이 자신 있게 외친 것 중에 답이 아닌 것은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마치 추락이..
만남의 광장 알바킹 최세영과 어쩐지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주인공이요..."여기서도 일해요?" "저번 직장은 잘렸거든요." 사정이 있어서 여기저기 알바를 옮겨다니는 최세영이요... "6700원 입니다." 여자는 주문한 음료를 계산하기 위해 카드를 내미려다가 점원의 얼굴을 보고는 멈칫했다. 점원도 움찔하는 듯 했다. 그 옆에 서 있던, 카페의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세영 씨, 계산 안 해 드리고 뭐해. 아는 사람이야? 하고 묻더니 여자와 '세영'이라고 불린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아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의 그것이긴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여자와 세영이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여자는 일단 계산을 한 뒤 음료를 받아 맡아놨던 자리로 돌아왔다. 세영과 마주친 것이 벌써 네 번째였다...
아, 교수님! 707×주인공 남자는 늘 정시에 시보라도 울리듯 강의실에 들어왔다. 항상 손에는 커피나 확실히 콜라는 아닌 빨간 캔의 음료수가 들려있었고 가끔 두 개를 동시에 들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도 이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평소대로 방금 내려온 듯 하얀 김이 피어나는 커피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 선 최교수였지만, 강의실의 분위기는 확실히 평소와 같지 않았다. 남자는 강의실을 한 번 돌아보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만, 여러분." 남자는 출석부를 집어들더니 짧게 한숨을 쉬었다. 늘 그렇듯 맨 앞에 자리한 여자는 그런 그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제 눈 앞의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좀 슬퍼지는군요." 아직 개강 직후의 들뜬 공기가 가시지 않기도 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