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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는 일

Caramel Colored 797

  세차를 하기 위해 나온 세영은 답답한 마음에 차창을 내렸다. 히터를 약하게 틀어놓은 탓인지 바깥의 공기와 차 안의 공기가 머뭇거림없이 금세 섞여든다. 정체된 도로에서 경적소리만이 요란하게, 사방에서 튀어오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세차 할 걸 그랬지. 하는 뒤늦은 후회를 입김에 담아, 희뿌옇게 풀어지고 있는 하늘에 내어본다. 심상치 않은 것이 눈이 오려는 모양이었다. 다른 운전자들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인지 여기저기서 담배 연기가 흩어진다. 차들이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하자, 세영은 주말도 아닌데 왜 도로에서 난리통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냈다. 초, 중, 고등학교 할 것 없이 주욱 늘어서 있는 학교들, 교문 앞 가판에 흐드러진 온갖 색의 꽃다발들, 교복을 입고서는 미묘한 표정들을 한 채 교정 안으로 들어서는 무리들. 졸업식들을 맞이하려는 모양이었다.


  세영은 결국 세차장 가는 것을 포기하고 차를 돌렸다. 세영이 도로에서 어떻게든 자기가 먼저 앞서 가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다른 차들과 걸핏하면 제 앞에서 딱 끊겨버리는 얄미운 신호들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졸업식들도 마무리 된 모양인지, 교문들 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거리에 긴 행렬을 만들어냈다. 거리를 무대로 한 졸업 퍼레이드였다. 하늘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발을 뿌려댔다. 쥐색과 감색의 코트를 입은 졸업생들에 안겨있는 크고 작은 꽃다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개중에는 사탕이나 과자로 된 것, 돈다발로 된 것도 있다. 세영은 그것들을 보며 조금 웃다가 소박하기 그지없는 축제의 현장이 갑자기 살풍경해져, 차창을 올리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그럼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가?
  글쎄, 형한테 뭐 먹고 싶냐고 물어봐야지.
  형, 짜장면 먹고 싶어? 난 먹고 싶은데. 탕수육도 먹고ー

  같은 교복을 입은 형과 동생, 부모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그들만의 부산스러운 즐거움이 창이 올라 닫히기 직전 진눈깨비와 함께 섞여 뛰쳐 들어와, 운전석에 주위에 머물렀다.


  맺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다. 대학을 마쳤다곤 해도 ‘최세영’으로서 맞이한 졸업은 아니었다. 사실 그 어떤 이름으로도 이룰 수 없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반쪽짜리 맺음이었다 할지라도, 저의 형제에게는 상상할 수도, 허락되지도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가슴께로 선득하게 파고드는 죄책감과 회한에 몸부림치면서도 자신은 이기적인 사람이었기에, 형제의 꿈을 자주 꾸었다. 꿈에서 세영과 형제는 잘 다려진 교복 셔츠를 입고, 반씩 나눠 가진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단 자켓을 걸치고 함께 현관을 나서곤 했다. 고만고만한 키의 형제가 교문에 들어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항상 깨고는 하였다. 새벽에 허기를 달래기 위해 팬 위로 깨뜨렸던 무수한 달걀들 중에는 쌍란도 더러 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행운의 징조라며 기뻐했을지도 모를 일이나, 적어도 세영만은 그렇지 못했다. 짓이겨지는 밤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형제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비록 사진에 담긴 모습이었지만, 그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세영에게 잠정적으로 수여된 졸업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크나큰 착각이자 자기만족이었고 또 기만이었다. 서로에게 선명해지기 위해 한없이 자신을 흐리게 만들었던 지난날들은 빙점이 되어, 가장 원치않는 방법과 모습으로 형제를 다시 마주하게 하였다. 그렇게 돌고 돌아, 이제서야 겨우 해후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그들의 재회에 대해 생각해본다.

  면과 장이 비벼져야 맛이 나듯이 사람도 어울려져 살아야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라고 먹는 것이 자장면이란다. 어디까지나 끼워맞춘 이야기임을 알고있다. 세영은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인공색소로 색을 입힌, 그 검은 음식을 한 그릇씩 나눠 먹고, 저희들만의 졸업을 맞이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리고 배가 불러오면, 조미료가 가져다주는 졸음을 기꺼이 받아들여 낮잠을 자도 좋을 것이다. 세영은 곧 집에 도착할 것임에도,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세란아, 점심으로는 짜장면 먹을래?”

  그리고 우리가 다시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되더라도, 여기에 있음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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