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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는 일

영원의 유예

707×주인공


  헤어지자. 누가 꺼낸 말이었더라. 굳이 답을 찾아내기 위한 자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여자도 알고 있었다. 이별을 고하는 사람이 누구였던 간에 저희가 닿았을 지점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바라 마지않았다. 연인의 혀를 묶기 위해 입을 맞추었던 이율배반의 묵계가 깨뜨려지기만을. 상대의 숨에서 읽어낸 바람을 조용히 품고 있다가 도로 토해버린, 서로가 서로에게 공범이었던 순간들. 그저 떠올랐을 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어울리지 않을 법한 사람이 약속했던 '영원'이.


  여자는 그 단어가 못 미더웠다. 여자에게 사랑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이어나갈 어떤 순간이 없다면 거기서 멈추어야 하는게 맞았다. 남자의 흔들림 없는 다정함을 사랑했다. 그런 사람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영원을 말해왔다-, 여자의 사랑은 그 순간부터 불연속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여자가 답을 찾아야 할 지점은 여기에 있었다. 허나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는지, 여자를 뒤로 한 퇴근길의 러시아워 행렬로부터 빵- 하는 경적소리가 몰려왔다. 그래. 일단은 집으로 가는 게 우선이지, 싶어 여자는 라디오를 켠 뒤 운전을 계속했다. 라디오에서는 그런 여자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Live Forever'를 내보내고 있었다. 한 때 좋아했던 락밴드의 히트곡이었다. 여자는 쯧, 혀를 한 번 찼다. 자기 차 안에서 까지 영원 타령을 듣고 있어야 한다니. 이루지 못할 소망을 몇 번이고 외쳐가며 노래하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기는 했으나, 사실 처음에는 퍽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러 주파수를 다시 맞추지는 않았다. 간만에 듣고 있자니 심심하지 않기도 했고, 그들을 따라 무슨 주문이라도 되는 양 되뇌이다 보니 그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노래하던 순간, 그 때의 젊음을 남겨놓으면, 이렇게 영원이 된다. 여자의 입을 통해, 이 노래를 따라 부를 앞으로의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여자는 답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지만 여자는 내리지 않고 그대로 운전석에 앉아 몸을 기댔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일곱 시 칠 분이었다. 여자는 주저 없이 연락처에는 저장되어있지 않은, 하지만 제 속에선 차마 삭제할 수 없었던 번호를 꾹꾹 눌러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의 묘하게 거슬리는 멜로디가 차 안 가득 울려퍼졌다. 늘 그렇듯 정확하게 58초가 지나자, 소리가 멎는다.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


  수화기 건너에 있는 사람은 침묵한다.


  "나는 아직 영원 안에 있어요."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으나, 여자는 어떤 한숨 같은 무엇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당신이 전화를 받을 때 마다 그 때 말했던 영원을 허락해주는 거라면, 그게 순간이라 해도 좋아요."


  이윽고 여자의 입도 닫혔고, 서로의 나직한 숨소리만이 던져졌지만, 그 누구도 전화를 끊지는 않았다. 여자는 알고 있었다. 남자가 결코 먼저 전화를 끊지 않을 것임을.

  그것은 저희들이 차마 잇지 못했던 영원의 유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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