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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는 일

707×주인공


  이 오피스텔에서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한 지 일주일 하고도 하루. 대체 일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그러니까 그 해커-‘세란’이라고 했다-가 남자의 동생이고 그가 RFA의 파티를 방해하려는 거고……. 확실한 게 있다면 그를 보고 난 후의 남자는 역시 이상하다는 것, 그리고 자신 안으로 너무 파고든 나머지 아무것도 보고 듣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굳이 맨바닥에서 작업하겠다는 것을 겨우 구슬려서 소파로 가게 했다. 이틀을 꼬박 새우려는 작정이었던 걸까. 이불이나 베개는 물론이고 물 한 모금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헤드폰만 낀 채로 노트북 액정을 노려보는 남자의 눈동자 색이 어쩐지 서늘하게 느껴졌다. 단지 액정 빛을 반사하는 안경알 때문에 그런 걸까.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남자의 금안을 사실 꽤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화로 시답잖은 장난을 치며 그 속에 상냥한 걱정을 담아주는, 그런 사람에게 어울리는 눈이라고 생각했다.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손가락이 쉴 새 없이 자판을 쳐낸다. 이 쓸데없이 넓은 공간을 남자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채워낸다. 타닥타닥하는 소리는 여자에게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여전히 남자의 태도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어느 정도 밤이 깊어지자 남자는 여자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건조한 말투로 ‘늦었어요. 자요, 빨리.’ 라며 긴 침묵을 깼다. 꾸물거렸다간 저 눈동자 저 눈빛이 그대로 와서 박히겠지. 사실 지금은 그런 시선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내기엔 아직 내성이 부족하다. 일단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씻고 침대에 눕는다. 그래도 벌써 자기는 싫었기에 괜히 메신저를 들락날락 거려본다. 하지만 온 신경이 침대 맞은편에 바로 보이는 소파 쪽에 가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역시 들리지 않는다. 그가 만들어내던 유일한 소리가. 멍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여자는 물끄러미 소리의 근원지였던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만 해도 분주했을 남자의 손가락이 다소곳이 자판 위에 놓여있다. 고개는 약간 기운 것 같이 보인다.

  자는 걸까. 이제까지 버티느라 힘들었겠지. 그렇게 독기를 품고 달려왔으니 진이 빠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굉장히 진귀한 풍경을 보는 기분이 되었다. 남자도 잠을 잘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여자는 이제 아예 소파 방향으로 엎드려 누워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내 남자의 고개가 뚝- 하고 떨어진다. 저렇게 자면 목 아플 텐데, 라는 생각과 동시에 여자는 천천히 일어나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이곳으로 온 후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순간이었다. 남자의 복슬복슬한 정수리를 바라보다가 자는 얼굴을 보고 싶은 욕심에 조심조심 소파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보면 안 될 걸 훔쳐보는 기분으로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살짝 흘러내린 안경 뒤로 그의 감긴 눈이 보인다. 쳐진 속눈썹이 꽤나 길다. 약간 벌어진 입에서는 가느다란 숨이 새어 나온다……. 저런 예쁜 입술로 ‘젠장’같은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뱉었단 말이지. 약간 발끈하는 기분이 되어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는 찰나, 여자의 시선 끝에 금색 눈동자가 닿는다. 약간 굳은 채로 한 쌍의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다. 또 무슨 쓴 소리를 할 지 몰라.


  "세븐씨… 그러니까 저는 그냥… 걱정이 되어서… 죄송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여자는 당황함이 역력한 기색으로 둘러댄 뒤 잽싸게 일어나 뒤돌았다. 하지만 곧 남자에게 손목을 잡히고 만다. 차갑게 감기는 그의 손바닥과 손가락의 감촉을 느낀다.


  “세브…?”


  남자의 이름을 미처 다 부르기도 전에 남자에게서 끌어당겨진다. 그의 입술이 여자의 입술에 부드럽게 내려앉는 것을 느낀다. 부리로 쪼듯이 서너 번을 밀어대던 그의 입술이 곧 찬찬히 떨어진다. 다시 여자의 시선에 금색 눈동자가 담긴다.


  “……씨.”

  “어떻게 이렇게 꿈에서도 예쁘지.”

  여자에게 하는 말인지 중얼거림인지 모를 말을 뱉고, 남자의 고개가 다시 서서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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