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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는 일

절취 후 선회불가

수거 차량 뒤 칸에 오른, 어둠에 파묻힌 검은 인영 두 개가 신음 같은 한숨을 뱉으며 늘어졌다. 그 한숨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채 가라앉기도 전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새벽을 파고들었다. 이런, 빨리 뜨는 게 좋겠다. 이번 일은 어째 영 깔끔치 못했어. 그새 담배를 피워 문 남자의 말이었다.

그런 남자를 말없이 빤히 바라보는 두 눈이 있다. 담뱃불을 담은 눈동자가 박제라도 된 양 어둠 속에 머물러 있다. 도통 속내를 읽어낼 수 없는 시선이었으나, 어떤 환경미화원이 작업복을 입은 채로 담배를 피우겠느냐는 물음이겠지 싶어 남자는 남자대로 그 시선을 받아쳤다.

그러는 너는 이 냄새 나는 차 안에서 먹을 게 넘어 가냐. 하여간 비위도 좋아.”

언제 챙겨온 건지 품 안에서 초코바를 끄집어낸 루시엘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대꾸도 하지 않고 트럭 끝에 수그리고 앉아 일용할 양식의 포장을 끌렀다. 임무 중엔 물론이요, 완수 후에도 하루 정도는 입에 아무것도 안 대던 녀석이 웬 일로. 고되었던 게지.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루시엘이 늦은 저녁식사를 우적거리는 리듬에 맞춰 벤더우드의 담뱃재가 흩어 떨어졌다. 밤의 입자가 가라앉듯이. 이윽고 트럭에 시동이 걸리자, 환경미화원 모자가 어설프게 품고 있던 벤더우드의 머리카락이 쏟아져 담배 연기와 함께 넘실거렸다. 반대 차선을 타고 온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이내 다시 멀어졌다.

 

 

안 가냐?”

차에서 내리자마자 갈증을 토로하던 루시엘은 2리터들이 페트병을 받아들고는 삽시에 대부분을 비워냈다. 저러다 녀석 본인이 물이 되어 바닥에 쏟아지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언제였더라, 현장에 나갔다가 사흘을 꼼짝없이 반 감금되어 있다가 돌아온 후로는 항상 저렇게 물을 찾아댔다. 벤더우드는 루시엘이 불처럼 물을 씹어 삼키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페트병을 집어던지고 겨우 숨을 몰아 쉴 때 즈음에서야 던지듯 말을 건넸다. 피가 튄 작업복을 훌훌 벗어 던진 루시엘은 대답 없이 차고로 향한 뒤 셔터를 올렸다. 기름칠된 지 오래인 셔터가 신경 긁는 소리를 냈다. 낙엽이 구르고 있는 빈 차고 구석에서는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루시엘은 몸뚱이를 짐짝마냥 끌듯이 걸어 커튼처럼 차고 뒤를 드리우고 있는 지저분한 담요를 걷었다. 냉각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의자 등받이를 한껏 젖혀 기지개를 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신음처럼 뱉은 후 털썩 주저앉는다. 그렇게 헤드폰을 쓰면, 동이 트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정보원 707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남은 일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가려면 빠듯했다. 루시엘은 볼륨을 한껏 높여,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렸다. 때문에 알아서 잘 치우고 가라는 둥, 학교 가기 전에 샤워는 하라는 둥 성질부리듯 툭툭 던져대는 벤더우드의 핀잔을 듣지 못했다. 피운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담배를 한 대 꺼내 들어 튕긴 지포 라이터의 경쾌한 소리가 차고 안을 울려댄 것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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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취업했어.

원체 말 수가 적은 녀석이 답지 않게 한참을 뜸들이다가 한다는 소리가 저렇다. 벤더우드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루시엘을 바라보았다. IT회사란다. 아무렴 그렇겠지. 달리 어딜 갈 수 있겠는가.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제법 몸집이 불어난 유망한 회사라고. 요 근래 일간지며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며 들리는 이름이기는 했다. 취업이라. 아주 당연하고 평탄한 수순이었다. 졸업시험만을 앞둔 유능한 아이비리그 재학 컴퓨터 공과대학 학생이 밟을 수 있는. 그렇지만, 이 녀석은.

707이잖아.”

길고 얇은 스푼으로 밀크셰이크를 휘젓던 루시엘이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최칠영이 아니고.”

유리잔 안의 작은 선회가 멎는다. 졸업하면 끝일 게임을, 뭘 어쩌겠다는 건데? 벤더우드의 의문에 루시엘은 고개를 바로 들었다.

, 졸업 안 해. ……못 해.”

 

 

이야기인즉 입사가 내정된 신입들을 불러 환영식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며칠 잡아 크게 한 판 벌이는 모양으로, 루시엘은 기어코 거길 가야겠다는 것이고. 그걸로 마무리를 지으셔야 하겠단다. 무슨 소리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입학 때부터 보스와 이미 이야기된 일이라 했다. 처리하는 방식이야 좀 난해하긴 했어도 임무 완수 자체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고분고분한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고집이란 고집을 다 부려 얻어낸 대학 입학증명서였다. 그러나 졸업장까지 거머쥐기엔 한낱 종잇장과도 같은 신분이었기에, 종국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이야기의 끝은 자명했다. 중퇴한다는 거구나. 왜 몰랐을까. 정보원이란 이름에 매달린 영원한 유급의 꼬리표를. 최칠영이란 이름은 이제 곧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형체가 되고 이름이 되고 null의 값이 되고 다만 기억으로 남겨지겠지.

어차피 학점은 다 따놓은 거 아니냐. 기왕 시작한 거 끝 좀 보게 해달라고 보스한테 졸라 봐. ……아깝잖아.”

됐어. 기자들도 엄청 올 거고, 나중에 귀찮아져. 우리 비행기도 어차피 그 전이야.”

그래서, 파티는 언제 가는데?”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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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엘이 넘기고 간 일의 처리는 나무랄 데 없이 깔끔했다. 늘 그러했듯이. 갑작스레 현장 임무까지 떠안게 되느라 부담이 없다고 못 했을 텐데 꽤나 부지런히 굴었겠구나 싶어졌다. 다 좋았지만, 문제는 녀석의 공석을 어떻게 보고하느냐는 것이지. 벤더우드는 머리를 한 번 헝클어뜨리고는 협탁 쪽은 보지도 않은 채 팔을 뻗어 그 위를 마구 헤집었다. 손가락 끝에 익숙한 담뱃갑의 형체가 걸렸다.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영 가벼운 것이, 아까 돛대를 피워낸 것을 겨우 떠오르게 했다. 사실, 마감 기한까지는 넉넉했다. 원체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긴 하지만 일에 있어서 무책임한 녀석은 아니었기에,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멀끔히 끝내놓았다는 것을 안다. 가끔은 그 이상을 해내기도 하니까. 유래 없이 바쁜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저희 둘 앞으로 임무가 던져질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임무 완수와 부재가 같은 선에 놓일 수는 없다. 보고를 올려야 했다. 벤더우드는 빈 갑을 냅다 던졌다. 담뱃갑은 벽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약이 오른 한숨과 함께 얼룩진 카페트에 곤두박질쳤다. 하루 정도라면 슬쩍 다녀오라 할 수 있었을 테다. 워크샵과 병행한다곤 하지만 뭔 놈의 파티를 사흘이나 해댄단 말인가. 무슨 생각으로 녀석을 가게 둔 건지 당최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전 부탁 한 번을 하지 않던 녀석의 객기가 가상해서? 남들은 머지않아 맞게 될 종결의 경험을 평생 겪지 못할 그 운명이 얄팍한 동정을 팔았기 때문에? 생각에 몰두하자 주변이 가라앉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싸구려 턴테이블에 오른 올드 디스코 컴필레이션 엘피판이 헛돌고 있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기적거리며 주방으로 향해 찬장의 위스키 한 병을 꺼내든다. 샷 잔에 위스키를 가득 채워 한 모금 만에 벌컥 들이킨다. 임무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탓인지 금세 약간의 취기가 올랐다. 그대로 소파에서 잠에 들려던 찰나,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최 칠영(Chillyoung Choi)님의 새 소식. 관리감독 차원에서 팔로우 해놓은 루시엘의 페이스북 계정의 알림이었다. 자정을 한참 넘어 새벽을 향해가는 밤. 한창 파티가 무르익을 시간이긴 하지. 벤더우드는 수긍하며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가늠이 되지 않는 인파 속에서 뭐라 뭐라 잔뜩 흥분해서 떠들고 있는 최칠영의 모습이 액정에 비춰졌다. 정말이지, 암만 봐도 적응 안 된다니까. 최칠영 학생은. 벤더우드는 피드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꼭 이 화면 안에서만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뜬금없이 웬 동화 하나가 떠올랐다. 마녀에게 목소리를 내주고도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의 이야기가. 그러고 보니 녀석도 머리카락이 붉더랬지. 만화 영화에서나 보았던 공주의 머리칼과 같이. 새삼스럽고 의미 없는 정보를 상기내고는 헛웃음을 켰다. 어쩌면 사실은 반대로, 707 EXTREME이야말로 정보원에 제 알맹이를 빼앗긴 물거품일지도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문 종잡을 수 잡념에 몰두하자 더욱 취기가 오르는 듯하여,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최칠영의 피드는 내리면 내릴수록 그 형체를 짚어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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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고작 담배 하나 사러 나온 거였는데 말이지. 술도 깰 겸.

차창 밖으로 알뜰하게 태운 꽁초를 던지며 벤더우드가 중얼거렸다. 이 예정 없던 여정에 대체 어떤 명분을 갖다 붙여야 할까. 미국에서 지낼 동안 루시엘과 함께 쓰려 장만한 중고 캐딜락에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이 탈탈거리는 소리가 영 거슬렸다. 이 똥차도 한국 가기 전에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데 말이지. 아주 그냥 확 퍼져버려라. 그대로 버려버리게. 말간 달무리만이 탁 트인 고속도로에 덩그러니 놓인 고물 캐딜락과 운전석에 앉아 불평을 늘어놓는 화려한 남자를 좇고 있었다. 명분이야 어쨌든 핸들을 잡은 이는 분명 자신이다. 일단은 관리감독 차원인 셈 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픽 업인 것이다. 차도 안 가지고 훌쩍 떠난 녀석이 곤죽이 된 채 아침에 돌아오는 건 역시 무리니까. , 그렇고말고. 세 시 언저리에는 파티 장에 도착할 듯 했다. 초대장이고 뭐고 소용없어져 모두가 파티에 뒤섞이기 알맞은 시간이었다. 될 대로 대충 상황을 정리해놓고 나니 할 일이라곤 속도를 올리는 것 밖에 없어서, 벤더우드는 엑셀을 있는 대로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도 밤을 버티게 해줄 담배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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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나니 새벽바람을 타고 흐드러진 오렌지 꽃 향의 기세가 대단했다. 만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 벤더우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티가 열리고 있는 곳이 분명할 건너편이 소란스러웠다. 샌님들 치고는 꽤나 화려한 놀음을 벌이고 계시는구먼. 벤더우드는 자켓을 한 쪽 어깨 너머로 걸쳐 메고 자신의 차림새를 살폈다. 타이를 매지 않은 흰 셔츠에 블랙 수트. 단순하기 짝이 없는 차림이었지만, 이 정도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싶다. 일이 곤란하게 되면 서버 행세를 하기도 편할 테고. 뭔 일이야 있겠냐는 심정으로 걸음을 뗀다. 불청객이라곤 하나, 간만의 파티인지라 괜스레 긴장되는 구석이 있었다.

 

벤더우드의 예상대로 파티는 이미 난장이었다. 술잔들은 떨어지고 깨져 구르고 있고, 여기저기서 틀어대는 음악들과 밴드의 연주가 뒤섞인 모양은 음악이라기 보단 소음에 가까웠다. 파티를 즐기고 있는 이들 또한 다를 바 없어 벤더우드 한 명 끼어든다 해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그런 난장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어떻게 최칠영을 찾아내느냐 하는 것인데……. 벌써부터 막막해져오는 것이 절로 셔츠의 목을 풀게 했다. 사실, 그냥 전화 한 통 걸면 될 일이지만 왜인지 그럴 마음은 들지 않았다. 픽 업이라는 명분을 달고 오긴 했지만 나름의 서프라이즈 쇼이기도 하니까. 존재감 넘치는 녀석의 새빨간 머리칼도 지금에서는 별 수를 못 쓸 성싶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잠깐은 즐겨 볼까하는 마음이 들어, 벤더우드는 서버가 나르는 샴페인 한 잔을 집어들 파티의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술에 취해 여기저기 송장처럼 널브러진 사람들의 다리며 팔이며 옷자락이 발에 채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풍경이었다. 현장 나가면 지겹게 보고 겪는 감촉인지라, 구두 밑창에 살덩어리가 짓눌리는 감각에도 바닥 한 번 쳐다보지 않고 길을 헤쳐 나갔다. 현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진짜 송장이 아니라는 것 뿐.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굳이 깨워 사과를 건넬 생각도 필요도 전혀 없었다. 아직 쓰러지지는 않았으나 역시나 만취한 사람들이 댄스 플로어 위에 한 데 엉겨 춤인지 뭔지 알 수 없을 몸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디스코 조명에 반사된 스팽글 드레스의 반짝임 때문에 눈이 부셨다. 샴페인을 홀짝이며 어색한 움직임으로 희미하게 울리는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본다. 언제 옆에 온 건지 모를 여자가 잔을 쑥 내밀었다. 그에 응하고자 벤더우드 또한 잔을 가져다 부딪친다. 엇 박으로 부딪힌 두 글라스가 쨍하는 소리를 내었다. 묶은 머리가 잘 어울리시네요. 얼마나 긴 거예요? 하하, 맨 입으로 보여주진 않죠. 다소 짓궂은 신변잡기가 이어진다. 이러고 한 명씩 붙들고 말을 걸다 보면 그 녀석도 곧 보이겠지. 여자와 떠들 동안 속으로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고 있자니, 저쪽 주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냉장고를 여닫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잠시 만요. 한창 자기 얘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여자를 두고 주방으로 다가선다. , 찾았다. 조리대 아래에 수그리고 앉아 단체용 피쳐 사이즈의 통을 째로 안아든 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는 루시엘이 거기 있었다. 늘 입던 후드 티에 아이스크림을 줄줄 흘리면서.

 

 

“Hey, Young.”

익숙한 목소리의 낯선 부름에, 루시엘이 슬쩍 눈을 들었다. Young. 최칠영의 친구들이 그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루시엘의 페이스북을 보다가 알게 된 그다지 쓸모는 없는 정보.

아주 개차반처럼 놀고 있을 줄 알았더니.”

당이 떨어져서 말이야.”

그게 뭔……. 대머리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

입만 열었다 하면 기운 딸린다며 당 타령을 하는 보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루시엘은 무표정하게, 하지만 납득할 수 없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아이스크림 퍼먹기에 몰두했다. 벤더우드도 조리대에 기대어 앉아 루시엘의 옆에 자리했다. 어쩐지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한 대 태워도 되겠냐는 뜻으로 눈썹을 치켜 올려보이자, 루시엘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역시 실내에서는 민폐이려나. 할 수 없이 주방을 뒤져 티스푼을 가져와 아이스크림 퍼먹기에 동참했다. 투박하게 생긴 통의 외관과는 달리 훌륭한 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루시엘 녀석이 아이스크림을 꽤 즐겨 먹었지. 녹은 아이스크림도 나름의 별미라며 죽처럼 들이키곤 했었다. 하여간 이상한 녀석이라니까. 아까 페이스북에서 본 최칠영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707로 돌아와 있는 점까지. 아닌가, 평소보다는 다소 말랑해진 태도가 딱 그 중간 어디의 지점 같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루시엘을 만났으니 목적의 반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제 녀석을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된다. 이 호화 맨션에서, 이 도시에서, 최칠영에서.

안 가냐?”

가야지.”

벤더우드가 내민 손을 잡고, 입 안이 온통 하얗게 가득 차도록 아이스크림을 욱여넣은 루시엘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호쾌한 걸음으로 테라스를 나서는 것이었다. 벤더우드가 미처 따라잡기도 전에 맨션 중정에 자리한 수영장의 다이빙대에 올라선 루시엘은 쌍수를 들어 산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더니 그대로 수영장에 낙하했다. 시간이 잠시 멎기라도 한 듯 굳어있던 사람들의 휘파람 소리와 비명과 웃음소리가 찰나의 공백을 메웠다. 루시엘 만큼의 질량을 알맞게, 그대로 뱉어낸 수영장의 물이 잔뜩 튀어 올랐다. 벤더우드는 흠뻑 젖은 앞섶과 바지 끝단을 보며, 차라리 물거품보다는 찬란한 물보라라고. 그런 생각을 했다.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캐딜락의 트렁크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누구의 것인지도 언제 마지막으로 세탁한 것인지도 모를 다소 퀴퀴한 모포를 뒤집어 쓴 루시엘이 조수석에 앉아 가만히 운전석을 응시했다. 뒷좌석에는 잔뜩 젖은 옷가지며 속옷이 널브러져 있다. 벤더우드는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리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럼 이제 돌아갈 일만 남은 건가? 한국에?”

, 그렇지.”

이것저것 정리할 게 많겠네.”

이 똥차랑도 이젠 안녕이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 괜히 경적을 울리며 성을 내는 벤더우드였다. 그나저나, 한국에서 지낼 집은 구했어? 벤더우드의 물음에, 아니. 하는 루시엘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한동안은 우리 집에서 지내. 보스도 어차피 그러라고 할 것 같은데. 대신 구해지자마자 잽싸게 나가라.”

, 분부대로 하겠습죠.”

성의 없이 대꾸하는 루시엘이었다.

그리고 조만간에 그 머리도 좀 치자. 갑갑하지도 않냐? 어떤 파티 가는 녀석이 그런 꼴을 하고 다녀. 안 그래도 곱슬머리라 좀만 두면 금세 정신없어지는구만.”

뭐야, 직접 쳐주기라도 할 생각? 내가 못하는 게 어디 있냐. 낄낄거리며 웃던 벤더우드는 언제 꺼낸 것인지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고는, 루시엘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담배 연기를 훅 뿜어낸다. 젖은 얼굴을 덮은 담배 연기 뒤로, 잠시 망설인 듯 잠긴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졸업 축하해.

 

 

 

 





 

절취 후 선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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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9

‘CIA 정기 보고회’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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